술의 역사 - 9편(근대의 술)

살이되는 정보 2018. 3.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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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술마시는 이야기꾼 조주객입니다.

고대-중세에 이어 근대까지의 술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또 나오면서 이제 좀 알만 한 술도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1500–1800), Protestant leaders such as Martin Luther, John Calvin, the leaders of the Anglican Church, and even the Puritans did not differ substantially from the teachings of the Catholic Church: alcohol was a gift of God and created to be used in moderation for pleasure, enjoyment and health; drunkennesswas viewed as a sin (see Christianity and alcohol).

근대 초기(1500~1800년 경), 마틴 루터, 존 캘빈 등의 성공회 교회 지도자와 청교도와 같은 개신교 지도자들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술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적당히 사용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다만 술에 취하는 것은 죄로 여겨졌습니다.(특히 기독교)

→종교에 있어서 술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당히 사용되면 좋은 것, 남용되면 그렇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였습니다.

From this period through at least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attitudes toward drinking were characterized by a continued recognition of the positive nature of moderate consumption and an increased concern over the negative effects of drunkenness. The later, which was generally viewed as arising out of the increased self-indulgence of the time, was seen as a threat to spiritual salvation and societal well being. Intoxication was also inconsistent with the emerging emphasis on rational mastery of self and world and on work and efficiency.

이 기간부터 적어도 18세기 초반까지, 음주에 대한 태도는 적당한 소비에 대한 긍정적인 본질과 술 취함에 대한 우려 증가의 지속적인 인식으로 특징지워졌습니다. 후자는 시간의 방종으로 비춰졌고 영적 구원과 사회 복지에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또한 자아 성찰과 일의 효율성에 대한 강조 기조와는 정 반대로 여져겼습니다.

→술의 부정적 기능에 대한 경계심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부쩍 높아진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n spite of the ideal of moderation, consumption of alcohol was often high. In the 16th century, alcohol beverage consumption reached 100 liters per person per year in Valladolid, Spain, and Polish peasants consumed up to three liters of beer per day. In Coventry, England, the average amount of beer and ale consumed was about 17 pints per person per week, compared to about three pints today; nationwide, consumption was about one pint per day per capita. Swedish beer consumption may have been 40 times higher than in modern Sweden. English sailors received a ration of a gallon of beer per day, while soldiers received two-thirds of a gallon. In Denmark, the usual consumption of beer appears to have been a gallon per day for adult laborers and sailors.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modern beer is much stronger than the beers of the past. While current beers are 3-5% alcohol, the beer drunk in the historical past was generally 1% or so. This was known as 'small beer'.

적당한 음주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음주는 종종 과도했습니다. 16세기의 알코올 소비량은 스페인 바야돌 리드에서는 1인당 연간 100리터에 달했으며 폴란드 농민들은 하루 3리터의 맥주를 마셨습니다. 잉글랜드 코번트리에서 맥주와 에일의 평균 소비량은 일주일이 인당 약 17파인트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인당 약 3파인트인 것과 비교되는 수치입니다. 스웨덴의 맥주 소비량은 현대 스웨덴의 그것 보다 40배나 많았습니다. 영국 선원들은 하루에 1갤런의 맥주를 받았고 육군은 2/3갤런을 배급받았습니다. 덴마크에서는 하루에 1갤런을 보통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의 맥주는 과거의 맥주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현대의 맥주가 3~5%의 알코올 도수인 반면 과거의 맥주는 보통 1%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스몰 비어"로 알려져있습니다.

→엄청난 양을 소비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지로 순 알코올 양으로 보자면 현대에 비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한 것은 여전히 신기할 따름입니다.

However,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spirits spread slowly. Spirit drinking was still largely for medicinalpurposes throughout most of the 16th century. It has been said of distilled alcohol that "the sixteenth century created it; the seventeenth century consolidated it; the eighteenth popularized it."

그러나 증류주의 생산과 유통은 천천히 이루어졌습니다. 증류주를 마시는 것은 16세기에 대부분 약용으로 여겨졌습니다. "16세기에 만들어지고, 17세기에 통합되어, 18세기에 대중화됐다"라고 말해져오고 있습니다.

→와인이나 맥주같은 발효주와는 대조적으로 증류주는 비교적 대중화가 늦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 beverage that clearly made its debut during the 17th century was sparkling champagne. The credit for that development goes primarily and erroneously to Dom Perignon, the wine-master in a French abbey. Although the oldest recorded sparkling wine is Blanquette de Limoux, in 1531, the English scientist and physician Christopher Merret documented the addition of sugar to a finished wine to create a second fermentation six years before Dom Perignon joined the Abbey of Hautvillers and almost 40 years before it was claimed that he invented Champagne. Around 1668, Perignon used strong bottles, invented a more efficient cork (and one that could contain the effervescence in those strong bottles), and began developing the technique of blending the contents. However, another century would pass before problems, especially bursting bottles, would be solved and champagne would become popular.

17세기에 새로이 데뷔한 술은 반짝이는 샴페인이었습니다. 샴페인의 개발은 프랑스 대 수도원의 와인 마스터인 돔 페리뇽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스파클링 와인의 기록은 Blanquette de Limoux이지만, 영국의 과학자이자 의사인 크리스토퍼 메렛은 돔페리뇽이 하우티빌러 대 수도원에 들어가기 약 6년 전에 2차 발효를 위해 완성된 와인에 설탕을 첨가했다는 사실을 기록했고 이로써 샴페인을 처음으로 발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668년, 페리뇽은 튼튼한 병을 사용하고, 코르크를 발명했고, 내용물을 혼합하는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파열되는 등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한 세기가 지났고 샴페인은 점점 인기있어져갔습니다.

→샴페인의 시초에 대한 글인데, 개략적인 글로 참고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The original grain spirit, whisky (or whiskey in Hiberno-English) and its specific origins are unknown but the distillation of whisky has been performed in Ireland and Scotland for centuries. The first confirmed written record of whisky comes from 1405 in Ireland, the production of whisky from malted barley is first mentioned in Scotland in an entry from 1494, although both countries could have distilled grain alcohol before this date.

곡물 증류주인 위스키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 세기 동안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의 증류가 행해졌습니다. 위스키에 대한 최초의 확인된 기록은 아일랜드에서 1405년에 나온 것이고, 맥아 보리로 생산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 1494년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두 나라 모두 최소 이 기록된 시기 이전부터 곡물 알코올을 증류할 수 있었습니다.

→진한 향이 나는 아이리시 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납니다. 위스키의 종주국을 다투는 두 나라의 위스키 역사는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근대의 술은 두 편으로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해서 근대의 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Wikipedia_History of alcoholic drinks

*지나친 음주는 간, 위장 등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음주 문화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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