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 - 10편(근대의 술2)-마지막편

살이되는 정보 2018. 3. 2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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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술마시는 이야기꾼 조주객입니다.

근대의 술 1편에 이어 마저 살펴보려합니다.

이번 포스팅으로 술의 역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룰 술의 역사 개괄, 시작하겠습니다.

Distilled spirit was generally flavored with juniper berries. The resulting beverage was known as jenever, the Dutchword for "juniper." The French changed the name to genievre, which the English changed to "geneva" and then modified to "gin." Originally used for medicinal purposes, the use of gin as a social drink did not grow rapidly at first. However, in 1690, England passed "An Act for the Encouraging of the Distillation of Brandy and Spirits from Corn" and within four years the annual production of distilled spirits, most of which was gin, reached nearly one million gallons. It should be noted that "corn" in the British English of the time meant "grain" in general, while in American English "corn" refers principally to maize.

증류주는 일반적으로 주니퍼베리로 맛을 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은 "주니퍼"에 대한 네덜란드어인 "제네버"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인은 이름을 제네브레로 바꾸었고 결국 "진"이 되었습니다. 원래 약용으로 사용되었을 때 진을 즐기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초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690년에 영국은 "옥수수에서 브랜디와 증류주를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고, 4년 이내에 대부분의 진은 거의 백만 갤런에 이르는 진이 생산되었습니다. 영국 영어에서 옥수수는 일반적으로 "곡물"을 의미하는 반면 미국에서 옥수수는 주로 옥수수를 의미합니다.

→진하고 향긋한 향이 일품인 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의 어원과 초창기에 약용으로 사용되면서 발전해 온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The dawn of the 18th century saw the British Parliament pass legislation designed to encourage the use of grain for distilling spirits. In 1685, consumption of gin had been slightly over one-half million gallons but by 1714 it stood at two million gallons. In 1727, official (declared and taxed) production reached five million gallons; six years later the London area alone produced eleven million gallons of gin. The English government actively promoted gin production to utilize surplus grain and to raise revenue. Encouraged by public policy, very cheap spirits flooded the market at a time when there was little stigma attached to drunkenness and when the growing urban poor in London sought relief from the newfound insecurities and harsh realities of urban life. Thus developed the so-called Gin Epidemic.

18세기 초가 다가올 무렵, 증류주에 곡물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법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였습니다. 1685년 진의 소비량은 50만 갤런을 약간 웃돌았찌만 1714년(약 30년 후)에는 200만 갤런을 기록했고, 1727년(13년 후) 공식 생산량은 500만 갤런에 달했습니다. 6년 후 런던 지역만 해도 1100만 갤런의 진을 생산했습니다. 잉글랜드 정부는 과잉 곡물을 이용하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진의 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공공정책에 힘입어, 매우 싼 증류주가 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도시 생활의 불안함에서 안정을 찾던 부랑자들이 이를 소비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진 전염병이라는 것이 돌았습니다.

While the negative effects of that phenomenon may have been exaggerated, Parliament passed legislation in 1736 to discourage consumption by prohibiting the sale of gin in quantities of less than two gallons and raising the tax on it dramatically. However, the peak in consumption was reached seven years later, when the nation of six and one-half million people drank over 18 million gallons of gin. And most was consumed by the small minority of the population then living in London and other cities; people in the countryside largely consumed beer, ale and cider.

그 현상의 부정적인 영향이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1736년에 2갤런 이하로만 진을 팔 것을 제한하고 세금을 극적으로 인상함으로써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7년 후, 6억 5천만의 국민이 1천 8백만 갤런의 진을 소비하면서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진은 대부분 런던이 아닌 도시에 살고있는 소수의 민족에 의해 소비되었고, 시골 사람들은 주로 맥주나 에일, 사이다를 소비했습니다.

After its peak, gin consumption rapidly declined. From eighteen million gallons in 1743, it dropped to just over seven million gallons in 1751 and to less than two million by 1758, and generally declined to the end of the century. A number of factors appear to have converged to discourage consumption of gin. These include the production of higher quality beer of lower price, rising corn prices and taxes which eroded the price advantage of gin, a temporary ban on distilling, an increasing criticism of drunkenness, a newer standard of behavior that criticized coarseness and excess, increased tea and coffee consumption, an increase in piety and increasing industrialization with a consequent emphasis on sobriety and labor efficiency.

진 소비의 피크 이후 그것의 소비는 급격히 감소해서 1751년에는 7백만 갤런을 조금 넘기고 58년에는 2백만 이하로 떨어졌으며 18세기 말까지 계속해서 감소했습니다. 진의 소비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저렴한 가격의 고급 맥주 생산, 옥수수 가격 상승과 세금 인상, 임시적인 금주령, 음주에 대한 비판 증가, 과음을 비판하는 사회적 경향, 차의 증가 등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커피 소비와 신앙활동의 증가, 산업화와 함게 절주와 노동 효율성에 대한 강조가 높아졌습니다.

While drunkenness was still an accepted part of life in the 18th century, the 19th century would bring a change in attitudes as a result of increasing industrialization and the need for a reliable and punctual work force. Self-discipline was needed in place of self-expression, and task orientation had to replace relaxed conviviality. Drunkenness would come to be defined as a threat to industrial efficiency and growth.

18세기에 술취함이 여전히 삶의 일부였지만 19세기에는 산업화의 진행과 안정적인 노동력의 중요성으로 인해 이러한 태도가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표현 대신에 훈련이 필요했고 노동이 휴식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술 에 취하는 것은 산업 효율성과 성장에 위협이 될 수 있었습니다.

Ethanol can produce a state of general anesthesia and historically has been used for this purpose (Dundee et al., 1969).

Problems commonly associated with industrialization and rapid urbanization were also attributed to alcohol. Thus, problems such as urban crime, poverty and high infant mortality rates were blamed on alcohol, although "it is likely that gross overcrowding and unemployment had much to do with these problems." Over time, more and more personal, social and religious/moral problems would be blamed on alcohol. And not only would it be enough to prevent drunkenness; any consumption of alcohol would come to be seen as unacceptable. Groups that began by promoting the moderate use of alcohol instead of its abuse- would ultimately form temperance movements and press for the complete and total prohibition of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beverage alcohol. Unfortunately, this would not eliminate social problems but would compound the situation by creating additional problems wherever it was implemented.

에탄올은 전신 마취 상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산업화, 급속한 도시화와 관련된 문제는 알코올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도시 범죄, 빈곤 및 높은 영아 사망율과 같은 문제에 따라 술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구 과잉과 실업도 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봉비니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점점 더 많은 개인적,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문제로 알코올이 비난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술 취하는 것을 막는것 뿐 아니라, 알코올 섭취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알코올 남용대신 적절한 사용을 촉진하자는 집단은 알코올의 전면 금지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불행이도 이것은 술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고 추가적인 문제를 만들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술의 역사에 대해 개괄만으로도 이렇게 긴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연한 술의 발견, 종교적이거나 의학적 사용,

술의 효용에 대한 갑론을박 등 우여곡절이 있어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 : Wikipedia_History of alcoholic drinks

*지나친 음주는 간, 위장 등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음주 문화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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